한 폭의 수채화 같은 세량지의 봄
이 이야기는 무려 8년 전 이야기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세량지의 봄
밤 12시 무렵 오비형(https://www.instagram.com/lighting_ob/)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늘 언제나 그랬다. 이렇게 밤 늦게 전화가 오는 건 출사 가자는 이야기 였다. 그 당시 난 부산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고, 오비형은 청주에서 생활하고 있었을 때 였다.
난 곧장 묻는다. 어디 갈꺼에요?
목적지는 전남 화순 세량지.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깊은 천연의 모습을 담아낼 수 있는 곳이다.
이따봐요~ 라는 말과 함께 사진장비를 갖추고 비엔나 소시지를 전자렌지에 돌려서 챙겨 놓는다. 4월의 산골짜기 새벽은 예상보다 춥고 배고프기 때문이다.
컴컴한 새벽에 세량지 근처에 도착하니 갓길에 수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다. 나도 갓길에 주차할까? 하다가 도로 옆 동네 길가에 주차하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그사이 난 출구를 지나쳤고, 목적지 주변은 중앙 분리대가 있어서 유턴 자체를 할 수 없는 곳 이었기 때문에 왕복 4차선 도로의 끝 광주 초입까지 가서 차를 돌려야 했다. 서두르자. 여명이 나타나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어두컴컴한 곳에서 오비형을 만나고 반갑게 인사를 마치며 오늘 관광버스 타고온 진상들이 좀 있다는 얘길 듣게 되었다. 사실, 세량지 라는 곳이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4월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온다. 그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머문 자리를 온전히 오기 전 모습 그대로 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만, 진사가 아닌 진상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일을 그르치게 한다. 새벽에 춥다며 모닥불을 피운다거나, 라면을 끓여먹고 치우지도 않는다거나, 술판을 벌이며 고성방가 하는 그런 모습에 동네 주민이 잔소리를 하면 말싸움으로 대꾸하거나 하는 등의 일들을 일으킨다. 그래서 한 번은 동네 주민이 세량지의 물을 다 빼내버린 일도 벌어지곤 했다.
소시지를 나눠 먹으며 촬영 준비를 한다. 이미 장사진을 친 삼각대 사이에 맡아둔 내 자리. 준비를 마치고 셔터를 한 번 눌러본다. 차디찬 기운이 퍼진 곳에 희미하게 세량지 건너편 나무들이 보이는 걸 보니 물안개가 제법 끼었다. 바람도 없어서 반영을 담아내기 좋은 조건이었다.
여명이 오르면서 차가운 기운은 따뜻한 기운으로 바뀌고, 세량지 건너편 나무들이 조금 더 짙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직은 수묵화 같은 무채색의 모습이지만 조금더 볕이 들게 되면 수채화 같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시간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바글바글한 사람들 틈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을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래된 사람, 언제든 웃으며 반갑게 맞아주는 그 모습이 그리워질 때면 꺼내보고 싶은 사진이 되길 바라면서 인증샷을 남겨두었다.
햇살이 들어오자 밥 로스 아저씨의 그림 같은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참 쉽죠? 라는 말이 귓가에 들리는 듯 하다.
안개가 상대적으로 덜 낀 가까운 곳엔 이미 짙은 색 한 가득
프레임 속 모습을 지켜보며 최적의 타이밍을 기다려 본다. 간혹 이렇게 기다리다가 내가 원하던 모습이 나타나지 않아 허탕을 치는 경우도 있다. 세량지 라고 해서 항상 환상적인 모습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정해진 정답 같은 최적의 사진만을 추구하던 그 때를 지금와 되돌아 보면 내가 왜 그랬나 싶기도 하다. 물론 예쁜 사진을 담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분위기나 나의 기분을 담아내는 것도 능력이다 라는 걸 이제서야 뒤늦게 깨우치게 된다.
사실 이 곳은 세량지 둑을 따라 삼각대를 펼쳐놓은 사람이 수백명은 된다. 위 사진은 내 오른편 모습인데, 4월 이맘때가 되면 전국 각지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특정 시간에 몰린다는 게 참 신기한 모습이다.
숲속 구석구석 삼각대를 펼칠 수 있는 곳이라면 어김없이 사람들이 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담기 위한 생각일 것이다.
물안개까지 핀 것은 좋았지만 연신 내 기대에는 못미치던 모습에 여기저기 담아본 모습. 참으로 초보 스럽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이 날의 최적 모습이라며 담아낸 사진.
욕심 같아선 물안개와 강한 햇살이 만나면서 나뭇잎 사이사이로 햇살의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그런 모습을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해가 많이 오르고, 물안개가 거의 걷히자 이제 하나 둘 철수하는 사람들. 혹시나 예상치 못한 특별한 아름다움을 보여줄까 싶어 기다려보지만 여기까지가 끝인가보오.
나도 못내 아쉬운 마음이 들어 돌아서 가는 길에 한 장 더 담아본다.
자세를 잡고 찍으려 보니 금새 물안개가 걷힌다.
해가 더 떠오르는 만큼 물안개는 점점 사라졌지만 싱그러운 봄의 기운을 담아 본다.
그리고 봄 하면 떠오르는 그 것, 유채꽃.
4대강 사업으로 영산강 유채꽃이 일부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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