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블로그의 감성이 그리운 40대 : 우연히 누군가의 길이 되었던 나
여행은 나를 위해 떠났지만,
누군가에겐 방향이었고,
용기였다. "
그때는 몰랐다. 내가 누군가의 길이 되고 있었단 걸

2008년.
나는 그저 여행 중 겪은 하루를 기록하던 블로거였다.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면 수익으로 바뀌던 시절도 아니었고,
정보를 정리해 파는 세상도 아니었다.
그저, 누군가 내 글을 읽고
댓글을 남겨주는 그 순간이 참 좋았다.
지금이야 손바닥 안에서
세상의 거의 모든 정보를 찾아볼 수 있지만,
그때는 정확하지도 않은 가이드북 한 권을 들고
길을 잘못 들었다가, 스스로 찾아내며 여행을 했다.
그런 날들을 기록한 글들이
하나둘, 내 블로그에 쌓여갔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냥 일기처럼 남긴 그 글들이,
누군가에겐 처음 떠나는 용기의 지도가 되었고,
인생 첫 해외여행을 결심하게 만든 나침반이었다는 걸.
기억 소환 - 그 짧은 말 한 줄이 오래 남는다

예전 블로그를 오랜만에 다시 열어봤다.
낯설 만큼 오래된 글 아래
그 시절의 댓글과 안부글에 눈길이 갔다.
"불안함을 설레임으로 바꾸어주셔서..."
짧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생긴 파문은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
그땐 그냥
"아, 도움이 됐구나" 싶어
잠깐 미소 짓고 넘겼던 글이었는데,
이제 와서 다시 읽으니
그 짧은 문장 안에
꽤 많은 감정이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첫 비행,
낯선 장소로 떠나는 여행의 두려움 속에서,
내 글의 작은 파편이
그 여정과 함께한 어느 메모 속에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기록은 나를 위한 것이었지만

인터넷이 되는 어느 공간을 찾아,
낮 동안 여행하며 잊지 않기 위해 적어두었던
감정의 조각들과 정보들을 꺼내 들었다.
노트북 앞에 앉아
하나하나 기억을 붙잡으며 글을 썼다.
사실,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기록하기 좋아하는 나를 위한 정리였을 뿐.
그때의 나는 몰랐다.
그 글이 누군가의 브라우저에서 열리고,
출국을 앞두고 떨리는 마음으로
내 글을 읽고 있었을 사람의 존재를.
그 마음까지는
그땐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그 밤, 나는 여행을 마무리하고 있었지만
어디선가 누군가는
그 글을 보며
자신만의 여행을 시작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어딘가에선,
이미 그 여행을 다녀온 누군가가
그때의 설렘을 떠올리며
내 글 위에 조용히 마음을 얹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날은 그냥 좋은 날이었을 뿐인데

그날 본다이 비치는 바람도 좋았고, 햇살도 좋았다.
나는 그저 기분 좋은 날씨와 멋진 풍경에 이끌려
카메라를 들고 해변을 따라 걷고 있었을 뿐이다.
특별한 목적지도, 대단한 계획도 없었다.
사진 몇 장을 남기고,
어딘가에 앉아 파도를 바라보고,
사람들을 바라보고,
천천히 숙소로 돌아왔던 그런 하루.
그날의 이야기를 사진과 함께 블로그에 올렸고,
운이 좋게도 그 글은 네이버 메인에 소개되었다.
그 덕분에
하루에 3만, 많게는 5만 명이 내 블로그를 찾아왔다.
지금처럼 알고리즘이 개인화되기 전이었기에,
우연히 내 글을 읽은 수많은 사람들과
그 순간을 함께 나눌 수 있었다.
그 수많은 사람 중에는
중학교 졸업 이후 만난 적 없던 동창도 있었다.
그땐 그저 신기하고 즐거운 마음뿐이었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날 내가 올린 그 사진을 보고
마음을 정한 사람이 있었다는 걸.
그곳을 꼭 가야겠다고,
그 해변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한 이들이 있었다는 걸.
내게는 그저 하루였던 기록이
누군가에겐 여행의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누군가의 작은 불빛이 되고 싶다.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 같은 시대에도
작지만 진심이 담긴 한 편의 글이
어느 누군가에겐 방향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배웠으니까.
요즘은 이런 글이 더 특별해지는 것 같다
이제는 더 많은 정보와 더 정확한 지도를 갖고
어디든 쉽게 여행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길은 많아졌는데 방향은 더 어려워졌고
후기는 넘쳐나지만
온기를 느끼긴 힘들어졌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오히려
'따뜻한 방향을 가리켜줄 글'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정보보다 마음,
리뷰보다 기억,
정확함보다 진심.
이제는 그런 글이
더 특별해지는 세상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도
다시 써보고 싶어졌다.
누군가의 여행이 막 시작되려는 그 순간,
첫 여행길을 지켜줄
작은 불빛 같은 글을.
혹시...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방향이 되어준 기억, 한 번쯤은 있지 않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