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10 - 나주 동신대 옆 송현불고기, 나주의 유령식당
우연히 예전 블로그를 돌아보다가 2010년 담아둔 송현불고기 포스팅을 보게 되었다.
그 때만 해도 도로 확장 때문에 가게가 곧 헐린다는 말이 있었다. 지금은 어떨까? 다음 로드뷰로 과거 송현불고기 위치를 찾아보게 되었다.
출처 : 다음 로드뷰
내가 처음 이 곳을 방문했을 때가 2010년. 로드뷰 이미지는 내가 다녀간지 한 달 후 모습이라 그 때 그 모습 그대로다.
2013년 즘에 태풍으로 심한 파손이 일어났는지, 가게는 이전하게 된다.
지금은 송현불고기 뿐만 아니라 그 뒷쪽에 있던 4층 짜리 건물도 사라졌고, 도로 토목 공사가 한창이다.
송현불고기는 동신대 앞 교차로 근처에 2층 건물로 이전했고, 분점을 냈는지 이 곳은 나주본점이 된다.
내가 알고 있는 허름한 건물의 몇몇 맛집들은 가게를 확장, 이전하고 났을 때, 그 맛이 달라지고 손님도 더 줄어드는 걸 종종 보곤 했다.
백종원의 3대천왕 1편에도 소개되었던 송현불고기는 방송 이후 문전성시를 이루다가 요즘엔 피크 때 만큼은 아닌 듯 싶다. 그리고 검색된 블로그를 통해 보면 예전 허름했던 가게에서 먹었던 그 맛이 나지 않는다 라는 글과 줄서서 먹을만 한가?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맛있다는 사람도 있다.
개인적인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입소문을 타고 아는 사람만 찾아가 먹던, 2010년 4월에 다녀왔던, 나주의 유령식당이라고 불리던 송현 불고기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려 한다.
이름하여,
응답하라 2010, 나주의 유령식당 송현불고기
2010년 4월
세량지의 깊은 천연의 모습을 담으러 오비형과(https://www.instagram.com/lighting_ob/) 그 추운 새벽에 만난 날이었다.
새벽 촬영을 마치고 유채꽃을 담기 위해 나주로 향했다.
한창 사진을 찍고나니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고, 뭘 먹을까 고민하던 차에 오비형이 근처 맛난 불고기 집을 안다고 했다.
"어떻게 알았어요?"
"어~ 나도 들어서 알았어~ 죽기전에 한 번 가보라든데? ㅋ"
반신반의 하면서 오비형의 어렴풋한 기억에 의존해 겨우겨우 가게를 찾아갔다.
동신대 정문에서 동신대를 왼쪽에 끼고 조금 올라가다 보면 보이는 허름한 집.
집만 허름해 보이는 게 아닌, 집 앞의 모든 물건들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간 듯 했다. 자전거만 타임머신 타고 온 듯한 분위기?
이 곳이 바로 송현불고기 집이다.
담배, 영업 합니다, 백열전구, 오래되고 기울어진 여닫이 문.
보통 맛집이라고 하면 허름한 건물과 함께 감성을 자극시킨다고 하지만,
여긴 좀... 해도 너무한 거 아닌가 싶은 의구심이 들었다. 고기맛을 보기 전 까지는...
노란색 스티커를 붙인 불고기 글씨.
난 저 글씨에 폰트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다. 가게 이름을 딴 송현 폰트 ㅋㅋㅋ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봤던 실내 모습이다. 간판 없는 유령 식당이라는 말 따라 실내는 어두 침침한 분위기에 유령 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분위기 였고, 식욕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에 내다 버릴 것 같은 분위기 였다.
뭔가 정리해 놓은 듯 하지만 정리되어 보이지 않는 모습, 선반도 오래되고 때가 끼어 있었고, 냉장고(?)에 붙은 스티커는 족히 10년은 지난 듯한 모습이었다. 20년 전에 산 듯한 플라스틱 식기 건조대 모습, 저 많은 공병을 팔면 얼마가 나올까 궁금하기도 했고, 밖에서 들어온 빛 마저도 먼 과거의 빛이 이제서야 도달하는 듯 했다.
주문을 하고(그 당시, 1인분에 7,000원. 조금 비싼 느낌이 들었다.), 이 곳 저 곳을 둘러봤다.
좀 전까지 식사하던 손님들이 접시 위 고기를 초토화 시키고 지나간 자리. 이 곳엔 이런 방이 2~3개 쯤 있었는데, 20년 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족히 30년은 된 듯한 분위기.
벽지마저 전문가가 아닌 셀프 시공을 했는지 위와 아래의 마감이 너무나 다르다.
깔끔한 음식점을 찾는 사람에겐 그야말로 최악.
옛날 모습, 그 분위기와 감성을 느끼고 싶은 사람에겐 최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것 하나 최근에 구비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는 물건들로 가득했으니까.
저 뒷쪽에 놓인 두루마리 화장지 마저도 오래된 것 같았다.
나, 여기서 정말로 밥 먹는 거야? ㅎㄷㄷ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허름함에서 오는 맛집이라는 기대는 점점 불안과 의심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라던데, 오늘 난 제대로 된 선택을 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 와중에 나의 감성은 점점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과거로 가고 있었다. 이 곳 분위기 자체가 날 그리로 데려가고 있는 듯 했다.
구석진 곳에 있는 두꺼비집 발견. 밖에서 새어드는 빛에 빈티지한 감성의 싹이 꿈틀꿈틀 거린다.
그러던 사이 밥이 나왔다.
불 중에 화력 좋다는 볏짚을 이용해 가게 한 구석에서 연신 구워진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연탄불이었다. 분명 내 기억엔 볏짚을 태우고 있던 모습이 선하다. 볏짚의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가긴 했는데, 이러다가 불나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불 때던 모습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3인분을 시켰는데, 보통 한 번 구울 때 1인분 씩만 구워진다고 해서 접시가 세 번 나왔다. 좁지 않은 식탁이었는데도 공간이 좁아 한 접시에 2인분을 쏟아 붇고는 먹기 시작했다.
목살, 전지, 삼겹 등 다양한 부위가 눈에 보였다.
큼지막한 고기를 자르지 않고 상추에 올렸는데, 상추에 고기를 싸먹는 건지, 고기에 상추를 싸먹는 건지 모를 정도로 고기가 큼지막 하게 나왔다.
가위로 자르지 않고 곧바로 상추에 올려 마늘, 양파, 된장을 넣고 한 입에 쑤~ 욱!
오옷! 이마슨!!!
양념의 맛, 정성의 맛, 추억의 맛, 감성의 맛 그리고 불 내음~
정말 이 때 그 맛은 감동이었다.
정말 배부르고 맛있게 먹고 나와서, 다음에 나주에 오면 가게 없어지기 전에 또 와야지 했는데, 아직까지 못가보고 TV에서 그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지금은 동신대 정문 앞 깨끗한 가게에서 계속 송현불고기를 유지하고 있는데, 과연 그 분위기, 그 맛이 날까?
그 땐 그랬다. 정말 죽기 전에 한 번 가봐야 할 불고기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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