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도 센트럴파크 겨울 in 송베리아
송베리아 라고 들어 보았는가? 그럼 대프리카는 들어 보았는가?
대프리카는 한여름의 대구를 가리키는 말이다. 너무 더워서 아프리카 같다 하여 대구 + 아프리카 = 대프리카 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송베리아는? 한겨울의 송도를 가리키는 말이다. 너무 추워서 시베리아 같다 하여 송도 + 시베리아 = 송베리아 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인천 송도는 바다를 매립한 지역이라서 서해의 바닷바람을 가장 먼저 정면으로 맞는 곳이다. 게다가 40층 이상의 고층 건물이 많아 바람 길이 좁아져 건물 사이사이로 강력한 바람이 끊이질 않는다. 모자도 날려버리고 옷깃도 여미지 않으면 옷도 날아가 버릴 것 같은 차가운 바람이 몰아치는 곳이다.
코로나로 재택 근무가 많던 어느 날, 눈도 내렸겠다, 출근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집 근처 산책에 나섰다. 내가 사는 곳이 송베리아 라는 것을 잠시 잊고 말이지...
지난밤 눈이 많이 내려서 나뭇가지에 눈이 얼어 붙은 상고대를 기대하며 아트센터로 향했지만 이게 왠일? 눈발이 나무에 채 붙어 있기도 전에 강력한 바람이 모두 쓸고 갔는지 기대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내가 상상하는 모습을 보려면 바람이 불지 않고 소복히 나무위에 눈이 쌓이는 그런 날을 선택해야 할 것 같다.
손끝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매서운 바람이 그치질 않았다. 카메라도 얼어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할까봐 품속에 넣고 다니다가 찍고 싶은 모습을 발견하면 그제서야 품 속에서 꺼내 한 컷 한 컷 담아보았다. 볕이라도 쨍하게 들어오면 조금 덜 추웠을텐데.. 라며 볕이 가득한 곳에 서 있어봤지만 건물 구석구석을 누비는 바람 때문에 따뜻한 온기도 모두 바람에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태양 빛 중 파장이 짧은 파란빛은 대기층을 채 통과하지 못하고 산란되고 파장이 긴 붉은색 빛 만이 지표면에 다다르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아침 저녁으로 가장 긴 대기권을 통과한 붉은색 빛을 만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빛은 붉으면 붉을 수록 쨍하면 쨍할 수록 더욱 진한 여운을 만드는 것 같다.
계단을 오르고나면 그랜드 피아노를 연상시키는 모습의 조형물이 있어서 올 때마다 담아보고 있다. 하지만 뻥뚤린 광장에 어찌나 바람이 매섭게 불던지.. 살갗이 드러난 곳은 날카로운 무언가로 마구 때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람을 등지고 있다가 사진 한 장 담고나서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바람이 세게 불어 구름도 빠르게 흘러갔었는데, 몇 초만 담았어도 흘러가는 구름과 함께 담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송베리아에서 삼각대 마저 들고 다녔다면 손이 얼어 깨졌을지도 모르겠다.
인천 아트센터에 올 때 마다 빼놓지 않고 찍는 사진이다. 이번 아침 산책 겸 출사도 이 나뭇가지에 상고대가 서려있길 기대하며 간 것도 있다. 그런데 너무 이른 가지치기와 필요 이상의 가지치기를 하는 바람에 볼품 없어진 모습이다. 잔가지가 많으면 많을 수록 사방으로 뻗으면 뻗을 수록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줄텐데..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여기도 매번 찍는 포인트. 포스팅 했던 아트센터 대표 사진으로 자주 보였던 모습이다. 사계절 모습을 모두 담아보고도 싶고, 난간에 앉아 셀카라도 한 장 남겨야 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매번 10분 촬영만 하고 다녀갔던 곳인데, 평소보다 여유있게 둘러보다보니 새로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트센터는 올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 야외광장을 문화 예술 광장으로 많이 활용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버스킹, 댄스, 연주, 퓨전 음악 등등 인천시나 연수구에서 지원이 들어가고 많은 아티스트들이 이 자리에서 자신들을 알리고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 2011년 즘,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옆 문화마당에서 몇 달을 두고 진행한 별밤 페스티벌 처럼 말이다. 그럼 문화 예술가들도 이 자리를 찾아올 것이고, 시민들도 공연 관람을 위해 찾아오면서 활기가 넘칠테니까 말이다.
아트포레에서 센트럴파크 호수까지 이어진 호수가 얼었다. 여기가 진정 송베리아 임을 알리는 것 같다.
바닷물이 얼면서 생긴 패턴이 다랑이 논 마냥 꽤 재밌어 보여 한 장 더 남겨본다.
출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트라이보울을 거쳐서 한옥마을까지만 가볼 계획이다.
스스로 음악을 연주하다 다른 사람이 건반을 건들면 연주를 중단하는 피아노
코로나19로 인해 작년 휴가는 송도 내에서 호캉스를 즐겼다. 송도에 살면서 왠 송도에 있는 호텔에 갔을까 싶지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평소 가던 제주도에 가는 건 부담이 되었다. 그래서 다른 특별함을 찾아보려고 송도 한옥마을 경원재를 선택했는데 퀄리티는 기대 이상이었다. 프라이빗한 공간과 마당, 공용 공간까지 어디든 다니며 한옥마을 체험을 할 수 있고, 호텔 내부는 투숙객에게만 제공되는 공간이라 사람이 북적이지도 않았다. 한옥 기와 지붕 너머로 고층 빌딩이 줄지어 서 있는 모습도 이색적이다. 객실료가 조금 비싼 게 흠이긴 한데, 한 두 번 정도는 이용해볼만 하다고 느낀 곳이다.
간밤에 눈이 내렸을 때 만든 것으로 보이는 눈사람
처마가 있는 곳이다 보니 오랜만에 고드름도 보게 된다. 어릴적 처마 밑에 매달린 고드름을 따다가 동네 친구들과 칼 싸움을 벌였던 기억이 있다. 더 길고 단단한 고드름을 찾아야 칼 싸움의 승자가 되었던 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이번 산책 겸 출사에서 건진 포인트. 이전에는 발견하지못한 새로운 모습이다. 한옥과 고층빌딩이 의외로 조화롭게 보이던 모습에 소복히 쌓인 하얀 눈이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이 사진을 찍고나서 뭐 그리 뿌듯하던지 ㅎㅎ.
사진을 찍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바라본 내 모습은 마치 남극이나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간 것 처럼 눈썹에 하얗게 고드름이 맺혔고 관절 마디마디가 꽁꽁 얼어붙은 느낌이 가득했다. 잠깐 잊고 있었다. 난 지금 송베리아에 있다는 걸.
며칠 후 눈이 또 내렸다.
해돋이 공원 메타세콰이어 길의 눈 쌓인 모습을 사진에 담고 싶어 출근길에 들러보았다. 적설량도 적었고 이 날도 바람이 많이 불어 나무에 눈이 쌓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한창 눈이 내리는 중에 찾아가야 겨울겨울한 사진을 건질 수 있을 것 같다.
봄이 되면 버드나무 잎사귀와 잔디밭의 초록, 연못과 고층 빌딩의 조화로 도심 속 힐링을 느끼기 좋은 포인트다. 봄이되면 잔디밭에 돋자리 깔고 소풍가고 싶은 곳이다.
매화가 지고 벚꽃마저 다 떨어진 4월에 갑자기 추위가 찾아왔다. 밖에 눈이 내리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추워졌다. 송베리아의 바람과 추위가 반갑지는 않지만 설경은 언제나 마음을 들뜨게 만든다. 일기 예보에서 다음 날 눈이 온다고 하면 밤잠을 설치던 어린 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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