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2009 - 해운대 속씨원한 대구탕
나의 첫 사회 생활은 부산에서 시작되었다. 신입사원 OT를 할 때 부산 해운대의 한국콘도에서(지금은 그 자리에 엘시티가 있지만) 숙박을 했다. OT 진행자는 밤새 숙소에서 술자리가 있는 걸 알았는지 아니면 기본 코스였는지, 아침이 되면 한국콘도 옆에 있던 대구탕 집으로 식사를, 아니, 해장 자리를 마련해줬다. 그 때 처음 맛본 속 시원하면서 쫄깃한 대구살이 일품이었던 대구탕의 맛과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은 2010년 초 즘 이전한, 미포항 바로 옆에 반듯하게 지어진 건물에 위치해 있다.
보통 허름하면서 숨은 맛집으로 있다가 가게를 확장, 이전하면 그 맛이 점차 달라지고 손님도 줄어드는 걸 종종 보곤 했다. 예전에 포스팅 했던 나주 동신대 옆 송현불고기도 그랬다. 허름했을 때는 정말 미친 맛이었는데 깨끗한 건물로 옮겨지고나서 그 맛이 나지 않았다. 여기 속씨원한 대구탕 집도 그랬다. 비슷한 맛이지만 원래 자리에 있었을 때의 그 맛과는 차이가 있었다.
응답하라 2010 나주 동신대 옆 송현불고기, 나주 유령식당
지금은 여러 맛집 리뷰어들에게 알려진, 2009년 11월에 다녀왔던, 해운대 속씨원한 대구탕의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려 한다.
응답하라 2009, 해운대 속씨원한 대구탕
2009년 11월
읍천의 항구와 등대, 몽돌해변, 주상절리, 일출을 구경하고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한 날이다.
새벽 출사를 마치고 차디찬 몸을 녹이기 위해 해운대 한국콘도 옆에 있던 속씨원한 대구탕 집으로 향했다.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던 선임도 OT를 통해 한 번 다녀갔던 곳이라 맛집임을 알고 가게를 찾아갔다.
예전 속씨원한 대구탕 집은 번호표를 받을 때도 줄을 서서 받아야 할 만큼 사람들로 붐볐다. 지금은 흐릿한 기억이지만 그 번호가 40번 대 까지 있었던 기억이 잔상처럼 남아 있다. 아침 식사라고 하기엔 조금 늦은 시간, 아침 9시 40분, 사진 속 모습이 이러했으니 피크 시간에는 어땠을 지 다녀가지 않은 사람도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만큼 사람들이 항상 가득가득 했다. 가게에 들어가 앉으면 이전에 앉아 있던 사람의 온기가 의자에 고스란히 남아 있던 곳이었다.
물은 셀프, 주차는 한국콘도에, 대구탕 포장, 8000원 선불
젊어보이는 송강호와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 곳곳에 붙어 있는 유명 연예인들의 사인, 손때 묻은 나무들.
인테리어를 한 듯 하지만 전문가에게 맡겼다기 보단 자기 마음 닿는대로 한 듯한 모습이 곳곳에 가득했다.
영화나 드라마 촬영이 자주 있던 부산이기에 해운대 주변에선 연예인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이 날은 강부자 선생님?을 가게 안에서 만나게 되었는데, 이제 막 식사를 마친 분께 아는 척하는 건 실례인 듯 하여 몰래 사진만 담아두었다. 한 쪽 구석엔 선임 얼굴을 넣어 같이 찍은 사진이라며 ㅋㅋ대던 기억이 떠오른다.
강부자 선생님은 주방에 들러 참 맛있게 잘 먹고 간다며 인사를 건냈고, 흔쾌히 사인도 한 장 남기며 자리를 떴다. 그렇게 남긴 사인 한 장 한 장이 온 벽에 가득했다.
맑은 대구탕에 공깃밥 한 그릇, 밑반찬 몇 가지가 전부인데
뜨끈한 국물 한 모금 들이키면 모든 노폐물이 싹 다 씻겨 내려갈 듯한 시원함이, 큼지막한 살코기 한 점 씹으면 탱탱하면서 쫀쫀한 맛이 일품이었던 곳이다. 어느 누가 먹어도 키야~~~ 소리를 절로 낼 정도로 환상적인 심플함이었다. 미포항으로 이전하기 전 마지막으로 갔던 이 곳의 맛은 언제나 감동이었다.
출사를 다녀와 몸을 녹일 때도, 밤새 친구와 술을 마시고 해장을 할 때면 언제나 이 곳을 찾아갔었다. 그리고 2010년 초, 이전한 가게에서 복작복작 하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깨끗하고 깔끔하게 정리된 가게에 들어서서 차디찬 의자에 앉아 첫 주문을 넣었을 때도 기억이 난다. 비슷한 맛인데 무언가 빠져있는 듯한 느낌, 평범해진 느낌. 10년 정도가 지난 지금은 다시 예전 그 맛을 찾았을까?
그 땐 그랬다. 부산에 가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들러보라고 얘기한 대구탕 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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